[기획]3·1절은 독립운동 상징...민족의식 깨운 항일운동 시발점

유관순 열사 중심에 서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이끌었다

이유정 기자 | 기사입력 2020/03/01 [22:52]

[기획]3·1절은 독립운동 상징...민족의식 깨운 항일운동 시발점

유관순 열사 중심에 서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이끌었다

이유정 기자 | 입력 : 2020/03/01 [22:52]

▲ 유관순 열사 서대문 형무소 수형기록 카드(사진=독립기념관). 

 

[이유정 기자] 2020년 3월1일 대한민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몸살을 앓는 동안 우리가 기억해야할 진짜를 잊고 있는 건 아닌가.

 

101년 전 일본의 군화에 짓밟힌 오욕의 시절 1919년. 이날 우리 민족은 탑골공원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마다 뛰쳐나가 만세를 부르며 민족의식을 일깨웠고 이 날 외침들은 독립 시발점이 됐다.

 

오늘날 우리 모습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묻혀 한민족인 우리 이웃을 미워하고 헐뜯고 책임전가 한다. 여기에 종교적 관념까지 더해져 시간을 소비하고 재화를 소비하고 나의 소중한 정신을 소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우리가 하나 돼 뭉친다면 101년 전 3.1만세운동처럼 불가능했던 일제를 넘어서는 저력이 있다. 지금도 우리가 하나 돼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함께하고 정신을 나눈다면 그 무엇도 대한민국 국민을 이길 수 없다.

 

-101년 전 유관순 열사 이야기를 해보자.

유관순 열사는 1919년 3월1일 서울 기미독립만세 운동에 참가한다. 이어 3월5일 남대문역 학생단 가두시위운동에 참가하고, 4월1일(음력 3월1일) 천안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해 시위를 벌이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됐다. 이때 그녀 나이 17세에 불과했다.

 

101년 동안 대한민국 독립운동 상징이 된 3.1운동은 전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의식을 연결해 왔다.

 

유관순 열사의 나이가, 독립운동이 본격화 되도록 의식을 깨운 희생이, 서대문형무소에 갇혀서도 당당히 맞선 정신이, 입에 담기 어려운 숱한 고문으로 결국 꽃다운 나이를 마친 안타까움이 역사의 뒤안길을 마다하고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해가며 회자되는 것이다.

 

“만국이 평화를 주장하는 금일을 당하야(중략), 우리는 비록 규중에 생활하며 지식이 몽매하고 신체가 연약한 아녀자 무리나 국민 됨은 일반이요 양심은 한가지라(중략),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 없으며 두려워할 것도 없도다. 살아서 독립기(獨立旗) 하에 활발한 신국민이 되어 보고 죽어서 구천지하에 이러한 여러 선생을 좇아 수괴(羞愧)함이 없이 즐겁게 모시는 것이 우리의 제일 의무가 아닌가. 간장에서 솟는 눈물과 충곡(衷曲)에서 나오는 단심으로써 우리 사랑하는 대한동포에게 엎드려 고하노니 동포! 동포여! 때는 두 번 이르지 아니하고 일은 지나면 못하나니 속히 분발할지어다.” (3.1운동 시기 발표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발췌)

 

-유관순 열사의 민족정신은 어디에서 기인했나.

1902년 충남 천안시 동면 용두리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계몽운동에 앞장섰던 부친 유중권 선생으로부터 민족의식을 배웠다. 열사의 부친은 구한말 가산을 털어 학교를 건립해 민족 교육 운동을 전개한 계몽가였고, 그렇게 하는 것이 조선의 국권회복에 근본이 될 것이라 믿었던 민족주의자였다.

 

또 민족을 계몽할 답이 종교에 있다 믿어 기독교 이념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신앙심을 돈독히 키워 나갔는데, 일련의 과정에 함께한 유관순 열사에게 이런 영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3.1운동은 어떻게 계획되고 시행 됐나.

1919년 2월 조선기독교청년회(YMCA), 천도교, 기독교 연합체는 별도로 독립운동을 계획 중이던 학생들에게 그들에게 합류할 것을 권했다. 2월25일 열린 학생대표회의 결과 연합 전선에 참가해 3월1일 탑골공원에 집결하며, 상황에 따라 독자적인 독립선언대회를 개최키로 결의했다.

 

3월1일 오후 2시 민족대표 29인의 독립선언식이 거행되고, 이를 지켜본 학생들과 시민들은 2시30분을 기해 독자적인 독립선언식을 추진해 시가지 전역에서 밤이 될 때까지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때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서명학, 김옥분 등 고등과 1학년 학생들 6명은 시위결사대를 조직해 만세시위 참가를 결심하고, 당시 최대 항일 민족독립운동이면서 민족혁명운동으로 회자되는 3.1운동 한복판으로 뛰어들게 된다.

 

학생들 대부분이 뛰어든 이날 만세 운동은 민중들까지 1만여 명을 넘었으며, 지축을 흔드는 ‘대한독립만세’ 외침은 민중을 일깨웠고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탄생시켰다.

 

급기여 조선총독부는 3월10일 중등학교 이상을 대상으로 임시휴교령을 내려 학교가 문을 닫게 됐고, 유 열사는 천안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부친 주선으로 감리교 동면 속회장인 조인원과 이백하 등 동네 유지들과 상의해가며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했고, 거사 당일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태극기를 직접 만드는 등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4월1일(음력 3월1일) 아우내 장날 정오에 유관순 열사를 필두로 한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다.

 

만세운동을 벌이던 중 눈앞에서 부친과 모친의 죽음을 목격한 유 열사는 부친의 시신을 둘러멘 채 군중들을 이끌었으나 결국 헌병대에 체포됐다.

 

-2020년 유관순 열사 평가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독립운동하면 떠오르는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3.1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더불어 3.1운동 상징인 유관순 열사를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유 열사의 공훈은 독립일이자 건국일인 1948년 8월 15일에서 14년이 지난 1962년에 이르러 인정받았다. 그마저도 서훈 3등급인 독립장에 그치고 만다.

 

이뿐 아니라 한때는 천안에서 열리는 유 열사 추모제에 대통령 화한조차 오지 않았으나, 보훈처 건의로 2015년 추모제부터 대통령 화한이 오고 있다. 정부 의전 규정에는 1등급 대한민국장과 2등급 대통령장만 대통령 헌화 진행이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 대표 독립운동가로 거론은 하면서도 실상은 푸대접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등급 서한도 조정이 필요하다. 1급에는 김구, 이승만, 안창호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이들도 있지만, 대만 장제스 총통 부인인 쑹 메이링(한국식 발음 송미령)여사도 등재돼 있다. 2급에는 이동녕, 신채호, 이범석 등과 여자 안중근 칭호를 받은 남자현 같은 이들이 있으나, 유관순 열사는 높은 평가에 비해 3등급에 머물러 있다.

 

이와 관련 지난 7월에는 청와대 국민 청원 홈페이지에 유관순 열사 서훈을 상향 조정해달라는 청원이 있었다. 의식이 있는 국민들은 서훈 등급에 막혀 대통령이 유 열사 영전에 헌화도 못한다는 지적과 빛나는 상징성과 실제 공적에 합당한 처우가 있어야 함에도 3등급에 그친 것은 친일파 농간 또는 남성 편중 때문이라는 쓴 소리를 내고 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79명이 천안 출신 독립운동가로 등록돼 있다. 훈격별로는 ▲대통령표창 8명 김채준(3.1운동), 이규영(3.1운동), 이규태(3.1운동), 이성호(3.1운동), 이소용(3.1운동), 이훈영(3.1운동), 정진숙(국내항일), 조쌍동(3.1운동) ▲대통령장 1명 이동녕(임시정부) ▲독립장 10명 유관순(3.1운동), 유민식(만주방면), 유창순(국내항일), 이붕해(만주방면), 이장녕(만주방면), 이종건(광복군), 장두환(국내항일), 조병옥(국내항일), 최은식(3.1운동), 홍찬섭(3.1운동) ▲건국포장 2명 박봉래(3.1운동), 정인석(국내항일) ▲애국장·애족장 58명 등이다.

 

외국인 포함 대한민국 전체로는 1만5180명에 달하며, 이중에 충청남도는 1241명, 충청북도는 513명이 등록돼 있다.

 

독립기념관 황민용 과장에 따르면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1만5180명은 자료가 남아 있어서 등록과 서훈 조정이 가능했던 것이고, 자료가 소실됐거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더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가보훈처 자료를 통해 3.1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 훈격이 독립장에 머물러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대한민국장(1등급), 대통령장(2등급), 독립장(3등급), 애국장(4등급), 애족장(5등급) 등에 서훈된 분들 모두 고귀하게 희생한 분들이다. 그렇기에 이들 애국지사들 품격을 생각해서라도 서훈 등급 재조정이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있었지만 이와 무관하게 애국지사와 순국열사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바로잡자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이 대부분 1년 6개월에서 3년 형량을 받은 것과 비교할 때 유 열사 삶은 훨씬 기구했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은 2019년, 충절 고장 충청도 천안을 중심으로 유관순 열사에 대한 마땅한 평가를 염원하는 대한민국 국민들 염원이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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