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양도성 10리 밖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분야별 8개 논문 통해 조선시대 성저십리 종합 연구

김민승 기자 | 기사입력 2020/06/26 [17:23]

조선시대 한양도성 10리 밖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분야별 8개 논문 통해 조선시대 성저십리 종합 연구

김민승 기자 | 입력 : 2020/06/26 [17:23]

▲ 조선시대 다스림으로 본 성저십리. 

 

“성저십리는 한양도성 밖 10리 지역을 의미한다. 성저십리는 국가권위를 상징하는 산천 관련 시설과 제단이 위치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한 외교적 공간이었다. 또한 주요지역에는 역원이 설치되어 지방과 도성을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 군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곳은 도성에 접근하기 직전 마지막 방어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민승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은 서울 역사 취약 분야를 보강하고 서울 연구자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서울역사 중점연구’ 발간 사업을 2016년도부터 시작한바 있다. 

 

26일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는 서울역사 중점연구 제5권으로 성저십리를 다룬 종합 연구서 <조선시대 다스림으로 본 성저십리>를 발간했다. 

 

이 책에는 총 8편 논문을 수록했는데 성저십리 인식과 정책, 한성부 성저십리의 지역적 특성과 성저민(城底民) 실태, 성저십리 군사문제, 성저십리 및 근교에서 설행한 국가제사, 성저십리 주요 사적과 문화 공간, 성저십리 무속 등이다.     

 

먼저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 인식과 정책’은 행정제도로서 성저십리, 성저십리의 구체적 구분과 공간을 제도적 차원에서 분석한 글이다.

 

성저십리는 한양도성과 연결돼 시대별로 다양한 정책이 시행됐다. 이를 지역별로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 위정자들이 성저십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정책을 펼쳤는가를 분석할 수 있다. 

 

제한된 공간이었던 한양도성 내와는 달리 성저십리는 유입되는 인구 거주지, 조운의 창고 소재지, 교통과 통신 출발 및 종착지, 각종 재 집결지라는 점에서 그 영역이 점차 확대됐다.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의 지역적 특성과 성저민의 실태’는 성저십리에 대한 사회적 분석으로 한성부 성저십리 경계와 기능, 행정체제와 운영, 주거대책과 거주양상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15세기 중반 이후 인구증가로 도성 안이 포화상태가 되자 성저십리로 분산책이 시행됐다. 

 

조선전기 성저십리는 각종 우범지대로 여러 가지 사회정책이 필요했다. 그러나 조선후기 국가의 시설확충과 그로 인한 모민(募民) 정책에 의해 형성된 마을이 많았고, 성저십리는 18세기 후반 도성 안팎을 양분하는 경계의 공간에서 한성부 행정 공간으로 변화했다.  

 

‘성저십리의 군사문제’는 성저십리의 군사환경, 주둔한 군영의 양상, 군사행동의 주요지점 등을 정리한 글이다.

  

성저십리 북부는 북한산이 있고 남부에는 한강이 있어 군사경계로 훌륭하다. 이러한 군사환경은 교통체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도로망에 정보전달 주요 기능을 담당한 역, 원, 봉수 등이 포진해 성저십리 군사적 기능을 강화했다. 

 

성저십리의 군사적 기능에 따라 여러 군문에 군사 시설들이 설치됐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이후에 성저십리 내 시설들에 대한 군사적 기능은 더욱 강화됐다. 

 

‘성저십리에서 설행된 국가제사’는 성저십리에 대한 예제적 접근으로 한양도성과 구분해 국가제사 설행과 관련한 성저십리를 분석했다. 

 

조선시대 성저십리에 설행된 국가제사는 후대에 들어와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많은 제사가 한양도성 안에서 설행됐지만 성저십리와 근교에서 설행되기도 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제사가 제대로 설행되지 못했지만 18세기 각종 전례서와 법전류, 지지 등이 편찬되면서 성문화됐다. 

 

‘조선시대 성저십리의 무속’은 성저십리 안에서 무속을 다스렸던 정부 정책과 이에 대한 신앙행태에 대해서 다가치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조선시대 다스림의 대상은 백성들이며, 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속에서 전개되는 백성들의 삶은 어려움이 많았고, 이들의 안식처는 종교적 이상향과 동경이며 가장 친숙한 종교적 기능은 무속이었다.  

 

이들을 위한 국행제를 행했던 공간이 성저십리안에 존재하였으며 또한 정책적으로 신사를 금하는 규금의 지리적인 범주가 성저십리까지였다. 

 

‘조선시대 성저십리의 농업’은 성저십리가 도성에 채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보여주는 글이다.

 

조선의 국왕은 농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 지를 살피기 위해 성저십리 범위에 해당하는 곳에 행차하기도 했다.  

 

성저십리 농업지역은 각종 농업이 발달한 서부 평야지대, 서강방, 용산방, 둔지방, 한강방 중심의 근거리 농업이 발달한 남부지역, 채소 중심의 농업이 발달한 동부지역으로 구분된다. 

 

‘조선시대 문학작품으로 본 성저십리’는  문학작품에 표현된 성저십리가 지배층의 성저십리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소재였음을 보여주는 글이다.

 

문학에 나타난 성저십리는 북부, 남부, 서부, 동부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전기와 후기의 여러 문학작품에서는 반송지, 세검정, 북둔, 적전 등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있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조선시대 다스림으로 본 성저십리>는 서울 소재 공공도서관 등에 무상으로 배포되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며, 구입을 원할 경우 신청사 시민청의 서울책방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책값은 1만 원이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이 책의 발간을 계기로 성저십리 명칭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를 바란다”며 “앞으로도 더 좋은 ‘서울역사 중점연구총서’를 발간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스기사타이틀}

+

{첨부파일}
{제목}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