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안병하치안감 31주기 추모식과 안병하 공직자 바로세우기 운동본부 발대식

10월 10일 오전 11시, 서울시 동작동 국립묘지 경찰묘역서

이유정 기자 | 기사입력 2019/09/20 [15:41]

故안병하치안감 31주기 추모식과 안병하 공직자 바로세우기 운동본부 발대식

10월 10일 오전 11시, 서울시 동작동 국립묘지 경찰묘역서

이유정 기자 | 입력 : 2019/09/20 [15:41]

▲ 故안병하치안감 31주기 추모식 및 안병하 공직자 바로세우기 운동본부 발대식 포스터. 

 

[이유정 기자] 안병하치안감기념사업회(이하 안병하기념사업회)는 대한민국 경찰유족회와 무궁화 클럽과 함께 오는 10월 10일 오전 11시 서울시 동작동 국립묘지 경찰묘역에서 故안병하치안감 31주기 기념으로 추모식을 갖는다.

 

20일 안병하기념사업회에 따르면 이번 추모식은 안병하 공직자 바로세우기 운동본부 발대식을 함께 진행하며 폄하, 왜곡되고 있는 과거의 아픈상처를 올바로 정립해 국민 모두가 진실과 마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1부 순서로 ▲안병하치안감에 대한 묵념 ▲고인에 대한 약력 소개 ▲유족 감사 인사 ▲추도사 ▲헌화 등으로 진행된다.

 

이어 2부 순서는 ▲안병하 공직자 바로세우기 운동본부 발대 선언 ▲발대식 취지 발표 ▲기념사진 촬영 ▲식사 및 간담회 등으로 치러진다.

 

추모식 및 발대식 관련 자세한 사항은 안호재씨(故안병하치안감 자녀, 010-5577-3563)에게 문의하면 된다.

 

한편 前전남도경국장을 지낸 故안병하치안감은 전두환 신군부 시절 1980년 5월 18일 오전 0시를 기점으로 계엄령이 선포됐을 때, 광주시로 투입된 공수부대가 무자비한 진압을 하며 안병하 경무관에게 강경진압을 명령하자 시민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경찰정신을 지키기 위해 신군부의 지시를 단호히 거부했다.

 

기록물에 따르면 주동자로 보이는 학생들을 체포했다는 경찰 부하직원 무전 보고를 듣고 학생들에게 피해가 발생치 않도록 연행과정에 주의하라는 안 경무관의 명령이 있었다. 시위 현장으로 이동하는 경찰들에게 “시민들의 야유와 비난이 있어도 대응하지 말라” “도망가는 학생들이 있어도 쫓지 말라” “시민안전에 유의하라”는 등 시민안전에 우선시한 지시를 내렸다.

 

또 동신고교 운동장에 학생들이 집결하고 있고 광주일고 학생들도 약 200여 명이 모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화학탄 사용은 가능한 억제하고 학생들에게 가혹행위를 하지 말라” “교문 안으로 밀어 넣고 하교 학생은 자극하지 말고 귀가시키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당시 경찰은 무자비한 진압에 열을 내던 군부대와 달리 질서유지 임무에만 충실했는데 이는 안 경무관의 시민을 우선시하는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두환 신군부는 경찰에서 중대한 과실을 저질렀고 이 때문에 계엄군이 전면에 나섰으니 5.18을 두고 경찰에 책임이 있다 주장했다.

 

당시 전남경찰청 제2기동대에서 근무했던 A씨는 “5월 18일 이전까지는 외출과 외박을 나갈 정도로 평화스러웠다”면서 “특히 대학가 시위 때는 일과 시간인 6시를 맞춰서 끝내줄 정도였고 끝나게 되면 또 수고했다고 학생들이 대원들한테 요구르트를 가져다줄 정도였고 내일보자며 손 흔들어 헤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에 전남경찰청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137명의 증언과 관련 자료를 수집했고, 그 결과 계엄군 투입 전에는 경찰 보호아래 평화적인 시위를 했다는 것과 시민무장으로 인해 계엄군이 발포하게 됐다는 신군부 주장과 근거자료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북한군 개입설과 교도소 습격설 역시 근거 없는 주장으로 드러났다. 특히 안 경무관은 상부 강경진압 지시를 거부하고 시민보호를 위한 경찰정신을 끝까지 지키며 사태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안병하, 그는 대한민국의 경찰이다. 제37대 전라남도지방경찰청장을 지낸바 있으며,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전두환 군부에서 내린 광주 시민들을 향한 발포 명령을 거부했다.

 

명령불복종으로 직위해제 된 그는 보안사령부로 끌려가 고문을 당해 후유증으로 투병생활을 이어오던 중 1988년 10월 10일 향년 60세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안 치안감 사망 당시 경찰청도 광주시청도 장례에 참석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경찰청, 광주시청, 김대중(전 대통령) 선생 사무실, 김종필 선생 사무실, 보훈처, 언론 등에 연락을 했고 그의 자손들은 그들이 영전에 찾아와 함께 슬퍼해 줄 거라 생각했지만 김종필 선생 사무실을 제외하고는 참석하지 않았다. 심지어 국립묘지 안장도 불허해 장호원 소재 진달래공원에 안장하는 불상사를 겪었다.

 

이후 자손들과 그를 기억하는 의인들은 국가를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고 갖은 고초 끝에 2005년 서울 국립현충원 유해 안장, 2006년 국가유공자 등록, 2017년 11월 치안감 추서 등 안 치안감 생전에 소원하던 일과 그의 명예를 회복하는 결과를 이뤄냈다.

 

그의 아들과 추모 모임 관계자들은 “당시 금전적 여유가 있어 제대로 치료하고 수술을 했다면 60이라는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늦었지만 지인들의 공유와 관심으로 정의로운 안병하 치안감을 역사 속에서 부활시킬 수 있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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