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고대역사학회, 일본 전방후원분 원류는 요서? 백두산?

제2회 학술대회에서 ‘동북아 적석총의 기원 및 계승 관계’ 새롭게 조명

강도녕 기자 | 기사입력 2020/06/24 [13:45]

동북아고대역사학회, 일본 전방후원분 원류는 요서? 백두산?

제2회 학술대회에서 ‘동북아 적석총의 기원 및 계승 관계’ 새롭게 조명

강도녕 기자 | 입력 : 2020/06/24 [13:45]

 

▲ 학술발표 나선 우실하 교수. 

▲ 적석단총과 문헌을 통해 본 백두산 서편 맥족의 요서진출 경로. 

 

[강도녕 기자]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홍산문화 적석총의 기원과 중국 ‘요하문명-장백산문화론’ 극복>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학술대회는 동북아고대역사학회가 주최하고 (재)롯데장학재단, (사)국학원의 후원으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 단국대 오대양 교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정경희 교수가 발표자로 나섰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은 동북공정 요하문명론을 통해 고대 한민족의 역사를 중국사로 바꾸어 놓고 한국사를 말살해가기 시작했다.  

 

요하문명론은 애초 중원이나 요서 지역에 대한 이론으로 출발got으나 점차 요하문명의 동쪽, 곧 요동·한반도 지역으로도 확대됐고 이 과정에서 요하문명 동진 이론으로서 장백산문화론이 등장했다.  

 

▲ 흥륭와시기 적석묘 유적.   

 

동북공정 양대 축인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 중심은 요서지역 대표적 고고문화인 홍산문화(기원전 4500년~기원전 3000년)이다. 

 

중국측은 홍산문화 성격을 중국 예제문화 원류이자 은나라 시원 문화로 규정한 후 문화의 본류는 중원지역으로 계승돼 중국문화가 되고 나머지 지류는 동아시아 각처로 전파됐다고 정리했다. 

 

이런 논리에 의하면 동아시아사는 홍산문화 종주인 중국사 확장이자 중국문화의 말단지엽이 될 뿐이다. 한국사 경우도 은나라 유민 기자조선에서 시작된 중국 지방사 일종이 된다. 

 

중국측 동북공정 시각의 홍산문화 연구가 이미 이론 정립 단계를 끝내고 이론의 내재화를 통한 중국사의 새로운 범주 정립 및 전세계적 홍보 단계로 들어간 현재, 이제는 한국학계의 대응과 입장 표명이 더 이상 늦추어질 수 없는 시점이 됐다. 

 

▲ 우하량 2지점 하층적석총 조기의 고제단.  

 

동북공정의 시작점이 홍산문화이기에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측의 대응 또한 홍산문화 연구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중국측의 홍산문화 이해가 홍산문화의 대표 유적인 ‘제단(단) · 사당(묘) · 무덤(총)’을 중심으로 하기에 한국측의 대응 논리 또한 일차적으로 단·묘·총에 대한 변증에서 출발하게 된다. 이에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홍산문화의 단·묘·총 중에서도 특히 단·총, 곧 ‘적석 제단·무덤’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측 대응의 현주소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한국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동북아시아 적석묘의 기원과 전파, 그리고 연결된 유물과의 연계성에 대하여>를 발표하였다. 

 

우실하 교수는 “적석 무덤은 요서지역 기원전 6000년경 흥륭와문화에서 시작되어 홍산문화에서 꽃을 피운 후, 몽골과 유라시아 초원을 비롯한 세계 각처로 전파되어간 묘제로 한민족의 상고·고대사와 밀접히 연결되어있다”며 “아직은 가설이지만 적석묘 · 석인상 · 편두 등은 서로 연결된 문화적 산물로 지역과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요소들이 다르나 모두 요하문명에서 기원한 것으로 좀 더 상세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중국학계에서는 중원문화와의 ‘유사함’에 주목하여 연구하고 황제족의 문명으로 끌고 가는데, 한국학계에서는 ‘유사함’이 아닌 ‘차이점’에만 집중, 결국 요하문명은 우리와 상관없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양산해가고 있다”며 홍산문화 연구에 대한 주류학계의 관심을 촉구하였다. 

 

두 번째는 단국대 오대양 교수가 나서 <대련지역 초기 적석총 유적의 현황과 특징>에 대하여 발표를 하였다. 

 

오대양 교수는 “최근 요동반도 남단의 대련지역에서 발견된 50여기의 적석총 유적이 요서지역 홍산문화의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그 연관성 문제가 관심을 받고 있다”며 “먼저 양자의 동질성과 차이점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오교수는 “홍산문화 후기 단계의 적석총 형태는 한결 같이 계단식 다층 구조, 밑이 뚫린 원통형 도기가 둘러진 형태, 중심묘와 부속묘의 관계가 뚜렷한 점, 유물은 모두 옥기만 부장되는 점 등의 형태적 특징이 나타난다. 하지만 대련지역 초기 적석총은  대부분 다실묘가 복합된 구조로 모두 단층인 점,  중심묘와 부속묘의 차등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 점, 부장품 역시 토기 위주인 가운데 석기와 옥기가 소량 발견되는 점 등 묘제의 조성 방법 및 출토 유물 방면에서 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하였다. 이에 현재로서는 “양 지역 묘제간의 유사점 내지 교차점을 찾기가 힘들다”고 하였다. 

 

오교수는 “다만 이 부분은 앞으로 폭넓고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많은 연구의 축적을 통해 현재 유사점 내지 교차점을 찾기 힘든 단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으로 다가서야 할 것이다”는 말을 덧붙였다. 

세 번째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정경희 교수가 <홍산문화기 우하량 ‘3층-원방-환호’형 적석 단총제의 등장 배경과 백두산 서편 맥족의 요서 진출>에 대하여 발표를 하였다. 

 

정교수는 “홍산문화의 대표 적석총인 우하량 적석총은 3층위를 보여 시기별 변화과정을 연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3기(기원전 3500년~기원전 3000년)가 되자 예전 2기에 없던 3층 계단식, 원형·방형, 환호시설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특히 ‘전방후원’ 형태의 3층 계단식 제단 겸 무덤이 등장하는데 그 원류는 기원전 4000년~기원전 3500년경 요동 백두산 서편이며 이러한 형태가 수백년의 시차를 가지고서 요서 우하량 지역으로 전파·만개된 것이다”고 하였다. 

 

더하여 유적의 시기 및 형태 비교를 통해 맥족의 요서 진출 문제 및 진출 경로까지 새롭게 해석하였다. “백두산 맥족이 요서 우하량 지역으로 전파시킨 신식 ‘3층-원·방-환호’ 방식은 요서지역 오랜 전통 무덤 방식인 돌담 무덤을 덮어씌우고 있었다. 이는 요서 토착세력과 백두산 맥족의 융화적 방식의 종족 결합, 더 나아가 맥족의 요서지역 토착화 면모를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또한 적석 제단·무덤 뿐 아니라 한·중 문헌기록을 통해서도 백두산 맥족의 제천문화가 요서·한반도 일대로 퍼져나갔음을 논증하였다. 

 

정교수의 주장은 홍산문화의 상징인 3층 제단, 또 일본의 전방후원형 무덤의 원류가 백두산 서편지역이고 그 문화적 주체가 한민족(맥족)이라고 주장한 점에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중국의 동북공정, 더 나아가서는 일본 식민사관까지 뒤집는 한국 측의 대안적 논의로서 시사적 의미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학술대회를 주최·주관한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과거 동북아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한국 상고·고대의 고유한 사상·문화적 원형성 규명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특히 중국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명백하게 논증하는 한편, 나아가 세계 속에 한국사 및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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